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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모로코

모로코여행#26 사막7 미드나잇 엣 디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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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 모로코여행#25 사막6 사하라 캠프에서 보낸 하루


Midnight at the Oasis

하늘에는 반달이 걸려있죠. 한밤중 오아시스에서


저는 운이 좋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 곳곳을 구경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역시 전세계에 있는 사막도 많이 가봤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의 고속도로 지평선에서 등장한 라스베가스,

마치 거짓말처럼 새하얀 모래로 이루어진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

그리고 남미 페루의 나스카 사막까지

비슷하다면 비슷한 많은 장소에 다녀왔지만,

항상 꼭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만은

반드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 간절한 열망은 제가 중학생일때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스마트폰이라는게 생소하던 때,

학생들은 다들 샤프(SHARP) 전자사전을 하나씩 끼고 다닐 때

제게는 PMP가 하나 있었고, 이 PMP에는 인터넷 라디오 기능이 있었습니다.

이름모를 외국 사이트에서 나오는 잔잔한 노래 한 곡이 제 상념속에 작은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 곡의 원곡을 소개하자면

1974년 빌보드 핫100 6위, 74년 빌보드 차트 13위에 오른

70년대 펑크음악의 감성이 꾹꾹 담겨있는 노래

Midnight At the Oasis 입니다.




David Nitchern 이라는 미국의 기타리스트가 작곡하고,

Maria Muldaur 라는 미국의 포크음악 가수가 불러 대히트를 친 노래입니다.

가사가 매우 유혹적이고 관능적이지만,

동시에 끝없는 모래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의 모습을

환상적 이미지를 첨가한 멜로디로 정말 잘 표현했다고 느껴집니다.


이 노래가 나온 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노래를 편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은,

제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계기이자,

10년전 인터넷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나오던,

현재까지도 그 페이지에 접속하면 가끔 들을 수 있는

Kim Waters 라는 섹소폰 연주자가 리메이크한 버젼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사막 한가운데에 있을 오아시스를 상상하며 언젠가 그런 곳을 꼭 가서

이 노래가 이야기하듯 낙타가 잠든 한밤중에 하늘에 떠있을 수많은 별들을 꼭 보고야 말 것이라고

몰래 작은 소망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은하수와 함께 할 소주 한병도 같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그리고 대망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막의 저녁



다행히 밤에 비가 그쳐 알리네 직원들이

야외에서 베르베르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흥겨운 밤을 만듭니다.

이국적인 리듬이 검은 하늘속으로 울려 퍼집니다.


흥겹게 듣다가 주황 두건을 두른 사람이 무쇠 캐스터네츠를 줍니다.

생각보다 무겁고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다같이 판 속으로 뛰어들어 흥겨운 화음을 만들어내봅니다.


그러던 와중, 무하마드가 갑작스럽게 외칩니다.


장작이 다 젖어서 캠프파이어를 못하겠는데?!


아니..

그토록 기대했던 낭만적인 캠프파이어를

비가와서 못하다니,, 심지어 비는 그쳤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들 풀이 죽은 채 각자의 텐트에 들어가서 쉽니다.

하지만 저는 쉴 수 없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안타깝게도 구름이 낮게 깔려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람이 세게 불어 구름을 밀어내긴 하지만

짙은 구름의 장막은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으로는 윤곽과 색깔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흙같이 어둡습니다.

적당히 카메라를 세팅한 후 운명에 맞긴 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사막에 갔던 날은 보름 전날이었습니다.

천공에 떠있는 거대한 달 때문에

구름이 걷히더라도 별빛이 가려질 것입니다.


사막에 간다면 반드시 그믐날 갈 수 있도록 일정을 짜면 좋겠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뀝니다.

바스라지던 구름이 다시 사막으로 몰려옵니다.

겹겹히 포개진 구름은 마침내 다시 이슬비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래언덕의 파도 속에서 비를 맞으면서도 별빛을 보기 위해 하늘을 연신 올려다봅니다.


오늘은 틀렸나 봅니다.

한밤중의 오아시스는 노래와는 달리 비가 내리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시 텐트로 돌아가 새벽에 나와 보기로 하고 잠시 잠에 듭니다.


약 새벽 4시

불현듯 눈이 떠지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여전히 달이 하늘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지만

검푸른 하늘 속에 작은 별빛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용히 셔터를 눌러봅니다.



별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드디어.. 비록 은하수를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동경하던 광경을 마주하니 소소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모래 언덕에 올라가면 더 멋진 사진이 나왔을 테지만

사막의 밤은 위험합니다. 맹독을 가진 생물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심한 부상을 당할 수 도 있습니다.

게다가 언덕의 가파름이 전혀 구별되지 않아서

모래언덕에서 굴러떨어질 수 도 있습니다.




알리네 캠프 위로 잔잔한 별빛이 보입니다.

잠시 바닥에 앉아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듣기 시작해봅니다.

비록 항상 상상해오던 사하라 사막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한밤중,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은 공간에서

가장 정적이던 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말없이 감상합니다.



같은 노래를 몇 번 반복 재생한 후에야

생각에 결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모로코 메르주가, 사하라 사막에 

그믐날, 달과 구름이 없는 맑은 날

반드시 다시 한번 더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10년뒤 돈 많이 벌어서 다시와야겠습니다)


이제 여행도 중후반으로 접어듭니다.

사막을 성공적으로 건넜으니, 내일은 페즈로 향합니다.

다음 편에...